자스민 꽃대가 하나 폈다. 영롱한 향기가 감돈다. 나에겐 어떤 여유도 없기에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도 눈이 벌개지도록 맞은 편 앉은 사람의 늘어진 양말만 봤더랬다. 나는 내가 죽도록 미웠다. 아침에 무엇이라도 해낼 것처럼 와글와글 웃고 떠들던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정말 사람들은 전쟁 중에도 사랑을 할까. 질문을 안고 돌아온 방구석에 꽃이 폈다. 너와 ...
잠들기 위해 벽을 보고 모로 누웠더니 앓는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숨 쉬는 박자에 점점 속도가 붙었고, 양손 약지와 새끼 손가락이 까딱까딱 흔들렸다. 그러다가 이내 울었다. 다짜고짜 눈물이 터졌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한 말들은 대개 이런 것이었다. 미워하지 마세요. 떠나가지 마세요. 대낮엔 재밌는 걸 보면 말이 많았고 종종 와글와글 웃었다. ...
필요 노을에 고양이는 갈대밭에 누워있구요 나는 뒤를 돌아 배를 타러 가요 지금은 여름도 겨울도 아닌 저녁 여섯시일 뿐이에요 계절이 없어서 서러울 일도 줄었어요 맨땅에 배를 띄우고 그 안에 들어가 앉아 가만히 숨쉬었습니다 한참 뒤에 생각해보니 나는 머리가 없더군요 야옹하고 울었지만 돌아보지 않았어요 멍멍하고 짖었지만 멈춰서지 않았어요 엉엉하고 불렀지만 나는 ...
해가 넘어가버렸다, 또. 이제 나는 5년차 일기러다. 여전히 별 거 없는 걸 적고 그게 일종의 이야기가 되길 바라는 사람이다. 책을 낸지 어언 2년이 되었고, 그간 쌓인 글들은 많지 않다. 작년엔 블로그보다 손일기를 많이 적었다. 새 책을 내려면 앞으로 또 다른 5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나저나 해가 바뀌기 전 사직서를 냈다. 모두 나의 새로운 앞날을 응원...
새벽에 출근하는 애인을 배웅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가 눈을 떴다. 눈 내린다는 문자가 와있었다. 나는 연초를 챙겨 바깥으로 향했다. 눈이 먼지처럼 날리고 있었다. 나는 차가운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방향을 응시했다. 첫눈이다. 오긴 오네. 담배를 비벼 끄고 방으로 돌아와 냄비에 물을 올렸다. 끓인 물로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며 방명록을 적었다. 지난 밤에 무서운...
꿈을 꿨다. 가정을 이루는 꿈. 작은 흰색 말티즈를 가족으로 맞는 꿈. 나는 눈물이 날만큼 기뻤다. 잠에서 깨자마자 곁에 누운 사람에게 꿈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희고 작은 강아지가 내게 달려온다. 나는 너를 처음 봤지만, 너에게 세상을 줄 수도 있었다. 꿈 속의 강아지야, 너는 지금 내 품에 있지? 언젠가 우리 꿈나라가 아닌 곳에서 만날 수 있을까? 꿈...
미움 받고 싶지 않다.
비가 내린다. 이설아님의 소곡집을 듣고 있다. 소름이 끼치도록 차가운 계절이 온다. 지난 여름인지 그것보다 오래된 여름인지, 아무튼 그때 나를 떠난 친구에 대해 적은 글을 읽었다. 나는 당시에 무척 허망하고 슬펐을 텐데, 이상하게도 나를 떠난 사람이 누구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픈 기억은 차츰 소거하게 되는 걸까. 요즘 더욱 자주 사람들이 나를 떠나는 ...
공덕에서 버스를 타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광장에는 사람이 많았다. 하나 같이 악마 뿔이 붉은 빛으로 반짝거리는 머리띠를 쓰고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모두 월드컵 중계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인파가 많은 곳을 지날 때면 조금 숨이 막혔기에, 걸음을 옮겨 경복궁역으로 향했다. 술집이 즐비한 골목의 좋아하는 식당을 찾았다. 옆 테이블의 대화 소...
크리스마스가 한 달 남짓이다. 후쿠오카로 향하는 비행기를 끊었다. 2018년도에 찾았던 롯폰마츠의 커다란 츠타야를 갈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츠타야는 서점이지만 여러 잡화도 함께 판매한다. 안경과 비니 같은. 바닐라 향이 녹진한 차도 이제 다 마시고 없기에, 다시 찾는다면 한 바구니 사오고 싶다. 여행 기간 내내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 혈압이 떨어...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한 뼘 떨어졌을 때 눈에 들어오면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는 기분이다. 벽에 붙은 흑백사진, 친구들의 손길이 남은 선물, 한 철을 함께했던 책, 극장 영수증, 약 봉투, 낡은 일기장, 입 근처로 세모꼴을 이루고 있는 세 개의 점들이나 연표처럼 새겨진 눈가의 주름 같은 것들. 맑은 얼굴의 그를 떠올린다. 나는 담배를 태우고 ...
대낮인데 하늘이 유독 검고 노랗다고 생각하며 동네를 걸었다. 비가 조금씩 떨어졌다. 월요일이라 사람도 없고, 날씨에 어딘가 쓸쓸한 구석이 있었다. 나는 점심 식사를 챙겨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렇게 허기가 심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굳이 밥을 먹기로 한 이유는, 이제는 그런 시절이 왔기 때문에, 아무도 내게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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